페이지

2018년 7월 29일 일요일

북유럽 성 평등 모델과 ‘미투’ 캠페인의 정치학

[프레시안 2018년 3월 19일 칼럼]

핀란드에서 박사 유학을 마치고 2018년 2월 28일 한국에 돌아온 뒤 한 달이 지났다. 한반도와 서울의 시계는 과연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그것보다 빠르고 다이내믹했다. 남북 그리고 북미 간 정상회담 합의 소식에서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혁안 발의까지 중대하고 굵직한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졌다. 

뉴스들 가운데서도 압도적 사건은 미투 운동으로 제기된 성폭력 고발들이었다. 원로로 추앙받던 시인의 행태에 대한 폭로에 이어 연극계와 영화계 등에 만연한 성폭력 관행과 구조의 폭로는 내가 지금 어디로 다시 돌아온 것인지를 속으로 되묻게 했다. 특히,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관한 뉴스들은 정치적 이념과 진영, 세대를 막론하고 한국의 엘리트 정치인들 상당수가 내면화하고 있는 가부장제적 권위주의와 권력 지상주의에 대해 새삼 질문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개별 사건 이면의 오래된 구조와 관행과 문화, 그 부패한 사회 정치적(!) 권력 관계를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미투' 캠페인과 사회적 반응 
이런 상념은 나를 북유럽의 미투 운동과 담론의 현황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보편적 복지국가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성 평등으로도 국제적 명성을 누려왔기 때문에 최근 전개되는 미투 캠페인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국제적 운동의 영향을 받아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도 최근 미투 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특히, 스웨덴에서 미투 캠페인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됐는데, 이 과정에서 TV, 라디오, 영화산업 등에 종사하는 일부 가해자들이 퇴출되는 일도 벌어졌다. 또, 6000명의 여성 변호사들이 단체로 서명해 법조계 내의 성적 학대와 차별 행태에 '무관용'(zero-tolerance) 정책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연극, 영화, 오페라 분야에 종사하는 천여 명의 여성 배우와 가수들도 집단 서명해 해당 산업에서 성희롱(sexual harrassment)를 영구 추방하고 관계 기구들의 정책 실패를 서둘러 바로잡으라고 촉구했다.  

핀란드에서도 최근 미투 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큰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다. 특히, 유명한 영화감독 아꾸 로우히미에스(Aku Louhimies)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여배우들에게 모욕적이고 위험하며 심지어 가학적(sadistic) 방식의 연기를 강요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TV 등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그는 2017년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 'Tuntematon sotilas'('이름없는 병사들'이라는 뜻, 20세기 핀란드 문학의 거장 바이뇌 린나Väinö Linna가 핀란드의 대소 전쟁을 다룬 소설을 원제로 한 것임)의 감독을 맡았다. 영화는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아 핀란드 영화사에서 최고로 기록됐다. 


▲스웨덴의 미투 캠페인 모습, 왼쪽 아래 사진은 스웨덴 평등부 장관 Åsa Regnér의 Me Too 집회 연설 모습 (출처: Me Too Sweden 페이스북 계정)


논쟁이 진행되면서 로우히미에스는 자신의 행위가 부적절했으며 자신이 감독으로서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의도와 촬영 진행 과정의 합의를 강조하던 그는 감독과 배우 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 속에서 피해자들과 주변 스탭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와 성 평등 모델: 특징과 성취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높은 수준의 성 평등으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과 높은 수준의 성 평등 시스템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됐는지를 살펴보고, 그 바탕 위에서 최근 미투 캠페인을 둘러싼 논쟁의 맥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흔히 보편주의 혹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체제로 분류되는 북유럽 모델은 (1)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다당제 정당체계와 의회 중심 대의민주주의, (2) 민주적 코포라티즘(democratic corporatism)과 합의적 정책 결정 시스템, (3) 보편적 복지국가 서비스 체계 등을 핵심 제도적 기둥들로 삼아 진화해왔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또한 가장 여성 친화적(feminine) 사회 문화를 발전시켜왔는데, 일부 학자들은 아예 성 평등(gender equality)을 북유럽 모델의 네 번째 핵심 요소로 간주하기도 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성 평등 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던 핵심으로 두 요소를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높은 수준의 여성 정치 참여율이다. 북유럽은 비교적 일찍부터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19세기에 활약한 당시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초기 사회 개혁 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여성 참정권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핀란드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노동계급의 형성과 시민사회의 성장, 그리고 여성 운동의 발전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점이 관찰된다.) 1906년 의회와 선거법 개혁을 통해 핀란드에서는 여성들을 포함한 만 24세 이상의 성인 모두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여성 참정권 보장은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것이었고, 여성의 피선거권까지 보장한 것은 세계 최초다. 오늘날 북유럽 의회들의 여성 의원 비율은 대체로 40% 내외의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여성할당제를 적용하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에 속한다.  

둘째, 보편적 복지국가 서비스의 공급을 통한 높은 수준의 여성 노동시장 참여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여성의 사회경제적 권익과 지위 향상이 가능했다. 1930년대의 노사정 대타협과 사민당-농민/자유당의 연합 정치를 통해 북유럽 복지국가의 기초가 세워졌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1980년대까지 보편적 복지국가 서비스와 사회보험을 완비함으로써 오늘날의 북유럽 모델이 완성됐다. 시장 중심의 영미식 자유주의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가구(households) 단위의 제도 설계와 자산 조사(means test)를 통한 자격 인증 방식으로 인해 결혼한 주부 여성들의 경우 사회보장 수급권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남성 노동자의 임금 고용 중심 사회보험 체계를 발전시킨 독일 등 중부 유럽의 보수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돌봄 영역에서 가족과 교회의 역할이 강조됨으로써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제약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북유럽 등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자산 조사 없이 전 인구계층을 포괄하는 보편적 사회보험이 발달했다. 나아가 건강, 교육, 주거, 아동과 노인 돌봄 등 제반 사회적 권리의 영역에서 보편적 공공 서비스의 공급이 이루어졌고, 이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 증진으로 이어졌다. 남성 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을 벗어나 개인주의에 기반한 2인 소득자 모델(Dual breadwinner model)로 이행한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이래의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 개혁 흐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은 EU나 OECD 등의 성 평등 지표(Gender Equality Index) 조사에서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를 나타내고 있다.  

68혁명 50년, 대안적 젠더 규범과 문화의 확립을 향하여
그러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미투 캠페인은 북유럽 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차별의 관행이 존재함을 드러내며 급진적 성찰과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예술 문화 산업 전반과 학교 등 교육기관, 법조계, 그리고 의회 등 정치권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남성 상사들의 권력 남용이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직업 문화가 지배적인 영역이나 불안정 노동과 비정규적 형태의 고용 계약이 일반적인 분야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도드라진다. 곧, 한국이나 북유럽이나 미투 캠페인이 공통되게 제기하는 것은 젠더(gender)를 매개로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파생시키는 억압적 인간관계의 시정 요구인 셈이다. 

문화혁명으로 불리는 1968년의 참여 민주주의적 글로벌 사회 운동은 전후 구축된 안정된 복지국가 체계의 성공이 불러온 역설적 결과였다. 북유럽의 맥락에서 보자면, 그 뒤 50년 만에 전개되는 미투 운동의 흐름도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사회의 현실을 더욱 급진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후기 근대적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대안적 성적 규범과 문화의 확립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핀란드의 미투 캠페인 관련 의회 토론을 주도한 사민당의 Tuula Hatainen 의원. 2018년 1월 대통령 선거에서 사민당 후보로 출마해 성 평등과 소수자 인권 신장을 핵심 의제로 캠페인을 벌였다. (출처: Hatainen 의원 페이스북 계정)


핀란드의 미투 캠페인 과정에서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의회와 정부, 공영방송 등 공신력 있는 대표 기구들과 노조 및 경영자협회 등 노동시장 대표 행위자들이 적극적으로 실태 파악과 공론화 과정에 나선다는 점이다.  

2017년 12월 12일 핀란드 의회는 사민당 의원 뚜울라 하따이넨(Tuula Hatainen)의 발의로 성희롱과 성적 학대를 주제로 한 본회의 토론 세션을 90분 간 진행했다. 의원들은 소속 정당을 초월해 학교와 직장 등 모든 영역에서 성적 괴롭힘에 대한 적극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핀란드 산업 분야의 이익을 대표하는 EK(핀란드 산업연맹)과 여러 분야의 노동조합들도 실태조사를 벌여 결과를 공개하면서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을 근절하고 평등한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는 서울대학교 강사입니다.)

<프레시안 칼럼> 원문 바로가기

사회적 대화를 위한 핀란드 모델: 핀란드는 어떻게 노사 대타협과 복지국가 합의를 이루었나?

노사 대결에서 합의로 대반전, 핀란드가 날아올랐다

[한겨레신문 2017년 11월 23일 기고문]


23년만의 총파업과 핀란드의 사회적 코포라티즘(Corporatism)

2015년 9월 18일, 핀란드의 3대 노조가 연합해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당시 유하 시삘라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합정부(중앙당, 보수당, 민족주의 포퓰리즘 핀란드인당 3당 연정)가 장기 경기침체에 빠진 핀란드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며 공휴일 및 초과근무 수당 축소, 연금생활자 주거수당 축소 등을 강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데 대한 항의였다. 하루이긴 했지만 총파업은 1992년 이후 23년 만의 사건으로 철도, 버스, 항공 등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되고, 어린이집과 병원 등 공공서비스 기관 상당수가 운영을 멈추면서 국내외 여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파업에는 핀란드 3내 중앙노조인 에스아꼬(SAK), 에스떼떼꼬(STTK), 아까바(AKAVA) 산하 단체들이 대거 참가했다. 당일 낮 헬싱키역 광장의 집회에 3만 명이 넘는 노동자, 시민들이 참가한 것을 비롯해 핀란드 전역에서 약 30만 명의 노동자들이 항의 집회를 벌였다. 집회에 참여한 진보정당들(사민당, 녹색당, 좌파동맹 등)과 노조 대표들, 그리고 시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축소와 재정 긴축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시삘라 정부가 노사 간 자유로운 단체협상을 통해 노동시장 정책 및 관련 사회정책의 기본 내용을 정해온 핀란드의 사회적 합의 모델을 위배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로써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중앙당의 시삘라 총리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은 수포가 되고, 핀란드의 사회적 코포라티즘 모델에도 큰 위기가 올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총파업 직후 반전이 벌어졌다. 핀란드 일반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최대 중앙노조 에스아꼬(SAK)의 대표 라우리 뤼리가 총파업 후 일주일 만에 노조의 사회협약안을 마련해 다시 제안한 것이다. 그는 자본 편향적 협약을 추진하는 정부의 제안 내용과 방식에 문제가 있지만 사회적 합의 프로세스를 파기하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합의, 시행하는 것이 핀란드 경제와 사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와 고용주 대표들의 전향적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이후 핀란드 정부도 노조안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긍정하며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던 고용주 단체를 압박해 협상을 진행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2016년 여름, 사회협약이 성사될 수 있었다. 한편, 협약 성사 이후 정년으로 에스아꼬 대표직에서 은퇴한 뤼리는 2017년 봄 지방자치선거에서 사민당 후보로 출마했고, 현재 필자가 사는 땀뻬레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노조 대표의 실용주의적 태도와 주도적 리더십, 그리고 이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 정치적 역량이 퍽 인상 깊었다.

북유럽 속의 핀란드: 같은 지향, 다른 경로

서울 시내 한복판을 질주하는 택시들 마냥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돼 버린 듯한 한국 노사 현실을 고려할 때, 핀란드에서는 어떻게 위와 같은 합의 문화가 가능할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핀란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핀란드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더불어 북유럽 국가의 일원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흔히 세계에서 가장 평등하면서도 우수한 공공정책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바탕에는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와 다당제에 기반을 둔 합의적 민주주의, 그리고 노사정 3자 협의에 기초한 이익 협상 체계를 일컫는 민주적 코포라티즘(democratic corporatism)과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사민주의적 합의 정치, 코포라티즘적 이익 조정 체계,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제도적 기둥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북유럽 모델은 시장근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뛰어넘는 제3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북구 국가들은 ‘극단의 시대’였던 20세기에서 살아남은 가장 뛰어난 정치경제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평등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나아가 이들은 오늘날 언론의 자유, 청렴성, 시민 참여, 민주주의 만족도, 사회적 신뢰, 행복지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제 지표들에서 매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의 경제 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주기적인 정치경제의 위기들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모델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 혹은 빼어난 회복탄력성을 과시해왔다.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핀란드는 한국의 논의에 더 직접적인 영감과 시사점을 제공하는 나라이다. 핀란드는 우리처럼 동과 서 사이에 자리잡은 ‘경계 국가’(border country)로서 20세기에 내전과 전쟁을 겪었고, 전후에는 냉전 질서의 제약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사 관계에서도 오랫동안 심각한 불신과 대립을 경험한 뒤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노사정 대타협에 이를 수 있었다. 이후 매 2년마다 정부의 중재 하에 이루어진 노사 대표 간 협상과 합의를 통해 임금과 노동조건은 물론 기본적 사회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왔다. 이를 통해 파업과 직장폐쇄가 맞서던 대결적 노사관계로부터 전국적 집단 교섭에 기반한 합의적 노사관계로의 성공적 전환을 이루었다. 어떻게 핀란드는 그와 같은 제도적, 문화적 대전환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핀란드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아래에서 함께 그 대답을 찾아보자.

합의적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하여: 분열에서 합의로

1809년 전쟁에서 패배한 스웨덴이 러시아에 핀란드를 양도한 뒤, 핀란드는 러시아 황제의 지배를 받는 대공국(Grand Duchy of Finland)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일시적인 권력의 공백을 초래했고, 민족주의적 독립 열망으로 고취된 핀란드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신생 독립국 핀란드가 걷게 될 새로운 운명의 세기는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독립한 지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아 내전이 일어났다. 빈곤과 토지문제 등 사회 모순이 심화했지만 부르주아 정당들의 사보타지로 의회에서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러시아 혁명에 고무된 급진 좌파세력들이 모험주의적 쿠데타를 추구한 것이다. 우파 애국주의와 좌파 혁명주의의 에너지가 끓어올라 임계점에서 충돌한 핀란드 내전은 헬싱키, 땀뻬레 등 남부 산업도시 지역을 장악한 좌파의 초기 우세에도 불구하고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고 엘리트 장교들을 많이 보유했던 우파(부르주아-중농 연합)의 승리로 귀결됐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의사당 광장에 있는 제정러시아 시절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은 핀란드와 러시아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헬싱키/ 조일준 기자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의사당 광장에 있는 제정러시아 시절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은 핀란드와 러시아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헬싱키/ 조일준 기자

내전의 상처는 컸다. 1918년 1월 23일 시작돼 약 4개월 간 지속한 내전에서 1만여 명이 죽고, 그 뒤 수용소 캠프에서 질병과 굶주림 등으로 다시 3만여 명이 죽었다. 무엇보다 좌우 이념을 중심으로 계급과 계층 간의 분열과 불신의 골이 깊게 팼고, 이는 20세기 후반까지 핀란드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로 인해 1930년대부터 노사간 대타협을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건설했던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이행 경로를 핀란드는 밟을 수 없었고, 내전 종식 후 50년이 지난 1968년에 이르러서야 노사정 대타협에 기초한 중앙 교섭과 임금 정책 실현을 제도화할 수 있었다.

1918년 내전 이후부터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시기는 ‘의회 정치의 복원, 그러나 노사관계의 불신 지속’이 특징이다. 핀란드는 1919년 입헌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복원했다. 파시즘 운동 등 우파 독재의 테러와 쿠데타 위협을 무릅쓰고 초대 대통령 스톨베리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은 입헌적 자유와 다원적 민주주의 질서를 지켜냈다. 특히 사민당은 내전 이후 오래지 않아 정치활동이 복권되면서 1920년대 중반부터 정부 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시기 복지국가를 향한 사회정책과 입법에 일부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내전의 기억 때문에 고용주 단체들은 노동운동 진영을 신뢰하지 않았고, 전국 단위의 단체교섭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시기 핀란드의 노조 조직률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전 유럽과 세계를 강타했을 때 핀란드도 소련과 두 차례의 전쟁(1939-40년 ‘겨울전쟁’, 1941-44년 ‘계속 전쟁’)을 치러야 했다. 대외 전쟁은 역설적으로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를 냈다. 좌파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회세력이 핀란드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다. 이후 고용주 단체들도 노동조합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41년 전시 경제체제 아래에서 전국 단위 첫 노사 협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노사 대타협에 바탕을 둔 사회적 합의의 틀은 마련되지 않았고, 1956년에도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지는 등 불안정한 노사관계가 지속했다.

1960년대 들어 중요한 변화가 시작됐다. 전후 경제재건과 사회발전을 바탕으로 정책결정자들과 지식인들은 스웨덴 등 다른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발전 경로와 이론적 논쟁에 눈길을 돌렸다. 뻬까 꾸시가 쓴 팜플렛 책자 <60년대의 사회정책>(60-luvun sosiaalipolitiikka)은 이론적, 정책적 가이드를 제시한 핵심 저술로 꼽힌다. 저자는 스웨덴 복지국가 이론과 경험에 관한 검토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사회적 평등, 경제 성장 사이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1956년 집권한 중도우파 출신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도 노사대타협을 통한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적극 인식하고 이를 강력한 정치적 의지로서 뒷받침했다. 1966년 선거에서 사민당이 승리하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좌파 세력의 영향력이 증가했다. 사민당과 공산당 지지 그룹으로 갈려 대립과 반목을 겪던 노동운동 내부의 분열도 사민주의적 방향으로 상당히 정리됐다. 물가급등에 따른 환율 ? 재정위기 속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당시 사민당 총리 라빠엘 빠아시오 내각이 주도해 노사정 대표들로 구성된 3자 협의체를 만든 뒤, 전국적인 임금 인상률과 주요 경제, 사회정책의 방향을 논의했다. 협상은 1968년 마우노 꼬이비스또 총리 시기에 결실을 맺어 역사적인 첫 노사정 합의를 도출했다. 1968년 노사정 합의는 노동시장에서 지위가 약했던 노동자의 위상을 강화해 새로운 권력 균형을 만들어냈다. 1968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핀란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정책에 입각해 보편적 복지국가 체계를 완성했다. 사민당과 중앙당은 이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정당 정치 세력들로 자주 연정을 이루어 서로 경쟁, 연대하며 복지국가 팽창을 이끌었다. 대도시 노조 기반의 사민당이 포괄적이지만 임금 노동 중심의 사회보험과 복지 서비스를 선호한 반면, 정규적 노동시장 외곽에 존재하는 농민과 산림업종사자, 농촌 주민 등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중앙당(구 농민당)은 보편주의적 복지 체계를 선호해 왔다. 보편주의적 사회권 기반 시민권(citizenship) 모델과 임노동 연계 복지(workfare) 모델은 핀란드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 녹아들어있는 두 개의 핵심 원칙이다. 주요 정책 실행 및 입법 과정에 두 원칙이 함께 결합돼있다.

노사정 3자 이익 협상 체계의 확립은 핀란드 민주주의의 정치적 안정에도 기여했다. 극단적 다당제에 기반해 가장 파편화된 정당체제를 운영하던 핀란드는 잦은 정국 불안정으로 정부의 임기가 매우 짧은 나라였다. 노사 대타협과 이를 추동한 중앙당-사민당 연합 정치는 정국 안정에도 기여해 1983년 이후 대부분의 정부가 4년 임기를 채우는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사민당의 깔레비 소르사 총리는 다양한 이익단체 대표들과 정치행위자들이 참여하는 꼬르삐람삐 컨퍼런스를 설립해 공동의 이해 증진을 도모했다. 이러한 변화들과 더불어 합의적 정책결정과 정치문화가 보편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의 변화: 경제 위기와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강한 생명력

1990년대 초반 핀란드에 다시 중대한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 80년대 말의 부동산 버블과 은행권의 금융 위기에 이어 1991년의 소련 해체로 인해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한 것이다. 특기할 것은, 1930년대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3자 협의 체계는 중단 없이 지속한 것이다. 오히려 대외적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노동시장의 주체들은 노사정 3자 합의의 틀을 활용하고자 했다. 핀란드 정부는 이 시기 이후 초다수(super-majority)적 연합을 추구하는 ‘무지개 연정’(rainbow coalition)이 일반화되었고, 전국 단위의 임금 정책 및 주요 사회정책 방향에 관한 노사정 합의는 2년 혹은 3년을 주기로 갱신되면서 지속됐다. 핀란드는 재정 긴축과 일부 복지 수당 및 서비스 축소, 그리고 산업구조의 질적 개혁을 단행하며 전환의 터널을 통과했고, 노키아 주도 지식정보경제로 탈바꿈해 199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 년간 경제 성장과 활황을 경험했다.

2000년부터 12년을 재직한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앞줄 오른쪽) 시절, 핀란드는 국가청렴도, 국가경쟁력, 교육경쟁력 1위 국가로 올라섰다. 핀란드의 ’국민엄마’로 불렸던 할로넨 대통령의 2012년 퇴임식 장면. 도서출판 북하우스 제공
2000년부터 12년을 재직한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앞줄 오른쪽) 시절, 핀란드는 국가청렴도, 국가경쟁력, 교육경쟁력 1위 국가로 올라섰다. 핀란드의 ’국민엄마’로 불렸던 할로넨 대통령의 2012년 퇴임식 장면. 도서출판 북하우스 제공

2007년에는 산업 부문의 이익과 고용주 단체를 대표하는 에꼬(EK)가 전국 단위 노사정 협상을 중단하고 산별 및 지역 단위 협상만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1980년대 스웨덴 고용주 대표 단체가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정책 협의 틀을 거부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 또한 스웨덴의 경로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011년 보수당과 사민당을 비롯한 6개 정당 연합정권이 새로 들어선 뒤 에꼬(EK)는 다시 노동조합 대표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마라톤협상을 벌였고, 포괄적 임금 정책 방안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다. 당시 2008년 유럽재정 위기 이후 핀란드 경제의 어려운 여건과 이를 타개하려는 정부의 강한 압박이 있었다. 노사정 대표들은 2013년에도 새로운 사회협약에 동의했다. 2015년 유하 시삘라 정부가 추진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사회협약’은 좌초 위기를 겪었으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최대 중앙노조 대표의 인내와 주도적 리더십에 힘입어 2016년 여름에 최종 합의, 시행되었다.

2017년 한국의 노사관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을 맞이한 2017년 한국 사회는 다시 한 번 중대한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주권자의 염원을 배경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헌법과 정치제도 개혁부터 북핵 위기 극복과 한반도 평화·공존 체제 수립까지 어렵고 중차대한 임무들을 부여받고 있다. 그 가운데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건설과 더불어 노사간 신뢰와 합의에 기초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및 사회정책 거버넌스의 구축은 매우 본질적이며 중요한 새 정부의 국정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극복 과정에서 시작된 노사정위원회 등의 사회적 대화 기제와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 창출 시도들은 제도적, 정책적 기반이 형해화된 형국이다.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 시기를 거치면서 자본 중심의 편향된 합의 종용, 노동계의 반발과 불신 심화, 협약 파기와 장외 투쟁의 패턴이 반복된 결과이다. 국가주의적 권위주의의 유산, 재벌 중심 경제와 부패한 정경유착의 관행, 과잉 이념화된 노동운동,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급진적으로 시행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정책 등 안팎의 제약으로 인해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사회적 이익 조정 체계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포용적 성장과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하며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일자리 만들기,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공약 과제와 더불어 새로운 노사정 관계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 노?정 간의 높은 불신과 대립, 낮은 노조 조직률과 기업별 단체교섭 시스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균열과 편차, 여성·청년·노인 등 노동시장 편입이 어려운 다수 인구 집단의 존재 등 해법을 찾아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일과 노동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적, 사회적 변동의 가능성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노사관계의 대전환과 실용적, 합의적 정책 접근을 통해 안팎의 도전 과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이자 최근 많은 사람이 북유럽 모델에 관심을 쏟는 이유이다.

특히, 국제관계의 불리한 여건과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딛고 20세기 후반 대결적 노사관계로부터 합의적 노사관계로의 대전환을 일구어낸 핀란드의 경험은 한국의 정책결정자들과 시민들에게도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다. 대통령과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정치적 뒷받침, 노조를 대화 상대이자 노동시장의 핵심 파트너로 받아들인 고용주 단체, 책임성과 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전국 중앙노조와 그 대표들, 연정을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 발전을 주도한 정당들과 그 바탕의 비례대표제 기반 다당제 정치체제 등이 모두 어우러져 또 하나의 북유럽 모델, 20세기 핀란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여정을 밝혀주었다. 극단적 사회 양극화와 불신의 그늘 아래 수많은 시민이 고통받는 2017년 한국의 현실을 타개할 비상한 의지와 정치적 리더십, 그리고 새로운 집합적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 대학교 정치학박사, 미래세대정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hyeon.su.seo@uta.fi




원문보기: 

직접 입법(Direct Legislation)과 새로운 의회-시민 관계: 2018 헌법개혁 논의에 부쳐

[월간 <시대> 제58호/ 2018년 5월호, pp. 8-20.]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Tampere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울대 강사
 
1. 근대의 정치적 조건과 직접 민주주의 논쟁

다수의 독재또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직접 민주주의 구상은 루소(Rousseau)로부터 페이트만(Pateman)과 바버(Barber)까지 많은 참여 민주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어왔다. 이들은 회합 민주주의(assembly democracy)에 대한 고전적 이상을 회복함으로써 선거적 형태의 대의 정부가 가지는 민주적 결함을 극복하기를 희망했다. 직접 민주주의가 정치 과정의 중심에서 작동하는 스위스의 사례는 직접 민주주의가 근대 사회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도 실행될 수 있음을 입증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회합 민주주의와 달리 본질적으로 대의 정부 시스템의 기반 위에 수립된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매디슨 등은 (직접) 민주주의의 불안정함과 인민들의 불완전성 때문에 대의 민주주의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참정권조차도 20세기 초반 들어서야 도입, 확대되었다.

스위스는 1848년 혁명 이후 국민투표(referendum) 기반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국민투표와 (완전형) 시민발의제도가 1874년과 1891년의 헌법 개혁들을 통해 각각 도입됐다. 이후 미국의 많은 주들이 스위스 모델을 따르면서 주민투표와 시민발의를 제도화했다. 그러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 그리고 나치 등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일어난 대중 참여의 남용으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면서도 의회와 정당 중심의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선호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재생된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전후 구축된 안정된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복지국가 질서의 기반에 균열이 오면서 대안적 의제 설정과 직접 행동주의를 추구하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이 출현했다. ‘비판적 시민들’(critical citizens)은 더 투명한 정부와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적 시민 참여를 요구했다. 참여민주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의회와 정당 등 대의 기구를 우회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메커니즘이 더 자주 활용됐다. 알트만(Altman 2011)에 따르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국가 단위 수준에서 직접 민주주의 메커니즘이 총 949(시민 주도 메커니즘 328, 위로부터의 메커니즘 621) 실행됐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적 적합성, 국민투표와 시민발의의 정책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그리고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됐다. 논쟁은 주로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간의 고전적 이분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벗지(Budge 2013)은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근대 사회에서 함께 토론하고 표결하도록 모든 시민들을 소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유권자들은 이미 총선을 통해 정당한 정부와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3) 평범한 시민들은 숙고된 판단을 내릴 역량이 없으며 정책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다. (4) 다수의 전제(專制)와 소수자 인권의 침해라는 위협은 현실이다. (5) 정당과 입법부 등 중간 매개적제도들을 침식하는 것은 일관성 없고, 불안정하며, 무분별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에 대해 직접 민주주의의 옹호자들은 총선이 개별 정책에 관한 유권자 선호를 올바로 집약하는 것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수의 전제에 대한 전통적 두려움이나 인민의 역량에 대한 회의는 단지 직접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와 연관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오늘날 시민들은 점점 더 많이 교육받고 정보를 습득하고 있으며, 더 좋은 시민들은 참여적 경험을 통해 교육될 수 있다. 특히, 직접 민주주의 지지자들은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양립 가능성’(compatibility)을 강조한다. 이들은 신중하게 설계된 절차적 규정들과 더불어 매개된’(mediated)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는 스위스, 이탈리아, 퀘벡 등에서 보듯이 대의 기구들을 희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특정한 정책에 관한 선거대의제적 선거에도 이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 급속한 기술 발전은 온라인 포럼, e-서명이나 e-투표 시스템 등을 통해 시민들이 쉽게 논쟁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Budge 2013; Altman 2011)

직접 민주주의의 옹호자들이 내세우는 반(counter) 비판들은 오늘날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들로 들리지만 경험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더 검토해야할 중요한 이슈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핵심 이슈들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법적 프레임워크, 진입 장벽, 절차적 요건 등을 포함해 어떤 형태의 제도적 디자인이 대의 기구들의 본질적 기능을 침식하지 않으면서 직접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가? (2) 중간 매개적 대의 기구들이 시민 주도적직접 민주주의 메커니즘의 절차적 진행 과정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치거나 개입하는가? (3) 직접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다양한 형태의 부정의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가, 아니면 포퓰리즘적이고 보수적 의제들을 좇으며 소수자 권리의 제약으로 이어지는데 기여하는가? 스위스의 경험은 거시 경제적 수준, 사회통합, 시민 참여의 측면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긍정적 결과를 시사하지만 논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2. 직접 민주주의 메커니즘으로서 시민발의제도

시민발의(popular or citizens’ initiatives)는 국민투표(referendum)와 더불어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대표적 기제이다. 선거가 대표자(representatives)를 선출해 일정 기간 동안 정치적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민주적 정당성 기제인 반면, 위의 직접 민주주의 기제들은 선거 사이(between elections)의 시기에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민 발의는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수 이상의 시민 서명이 있는 경우 그 법안이나 정책 제안을 의회 등 대의 기구에 제출, 심의 받을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로서 일부 국가에서는 국민투표와 연계되어 실행되기도 한다. 시민발의의 기원은 스위스가 1891년에 제도를 도입한 데서 비롯됐다. 20세기의 정치적 격변과 헌법 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발의 제도는 오스트리아(1920년 도입/ 1963년 재도입), 이탈리아(1947/ 1970), 스페인(1984), 독일연방의 일부 주(1990)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 점차 확대됐다. 동유럽과 발틱 국가들은 1990년대 민주적 체제 전환 이후 새로운 헌법 제정 과정에서 시민발의를 포함한 직접 민주주의 제도들을 도입한 경우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14월 유럽연합이 유럽 시민발의(European Citizens’ Initiative) 제도를 채택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핀란드가 같은 해 시민발의제도를 헌법 개정과 연계된 별도 입법을 통해 도입했다.

시민 발의가 도입되는 과정의 각국이 처했던 역사적-정치적 맥락의 차이들은 개별 제도의 디자인과 실제 실행 과정, 그리고 정치적 효과 등에 투영돼 나타나며, 이로 인해 유럽 국가들의 시민발의 제도에는 매우 큰 다양성이 관찰된다. 우선, 기본적 제도의 유형을 비교해보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라트비아는 국민투표와 연계되어 운영되는 완전형 시민발의(full-scale initiatives)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페인, 그리고 EU와 핀란드는 국민투표와 연계되지 않는 의제형 시민발의(agenda initiatives)를 운영한다. 이탈리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그리고 독일의 일부 주들의 경우에는 앞의 두 유형을 모두 사용하는 혼합형 시민발의(mixed-form initiatives) 제도로 분류된다.

필요한 서명의 수와 서명 수집 기간 등 시민발의를 조직하기 위한 절차적 요건들도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스위스의 완전형 시민발의는 18개월 내 10만 명(유권자의 2%)의 서명을 요구하는 반면, 리투아니아 시스템은 3개월 내 30만 명(유권자의 11.4%)의 서명을 요구한다. 슬로바키아의 의제형 시민발의가 시간 제약 없이 10만 명(유권자의 2.3%)의 서명을 요구하는 반면, 이탈리아 시스템은 6개월 내 5만 명(0.1%)의 서명만을 요구한다. 제출된 시민발의에 대한 의회 심의 절차에도 상당한 정도의 편차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이탈리아 의회는 시민발의에 관한 절차적 규정을 구체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의회는 시민발의에 대한 심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반면, 폴란드 의회는 시민발의에 관한 의회 절차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시민발의의 정치적 역할 또한 해당 국가의 정치적 컨텍스트를 반영해 그 편차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직접 민주주의가 정치 시스템의 중심에 배태되어 있는 스위스에서 시민발의는 정책 의제와 정치시스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규모 연정과 광범위한 정책 협의 시스템에 기반한 스위스 방식의 합의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가 시민발의 및 이와 연계된 국민투표의 도전을 피하기 위하여 발전되었다. 반면,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시민발의는 상당히 주변적’(marginal)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데다 정치적 양극화와 권위주의 유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에서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나아가, 많은 나라들에서 정당들과 확립된 사회조직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제기하고 유권자들을 동원하는 데 시민발의를 적극 활용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3. 핀란드의 시민발의 제도: 발의 요건, 실행 과정, 정치적 효과

핀란드 시민발의제도는 의제형 시민발의제로 18세 이상의 투표권을 가진 시민 5만 명 이상이 6개월 이내에 서명하는 법안이나 정책 제안에 대해 의회(Eduskunta)가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핀란드 헌법 Section 53). 핀란드 모델의 한 가지 특징은 온라인 서명 시스템(e-collecting system)을 허용한 것이다. 법무부가 운영하는 공식 온라인 플랫폼(kansalaisaloite.fi)에서 시민들은 모바일 인증이나 은행코드 인증 등을 거쳐 쉽게 발의안을 제안할 수 있고, 관련 서명을 모으거나 지지 서명할 수 있다. 201231일 제도가 시행된 이후 6년이 경과한 201841일까지 약 750 건의 시민발의가 제안되었고, 이 중 22건이 5만 명 넘는 서명을 받아 의회에 제출됐다. 이 중 16건에 대한 심의가 종료됐고, 그 중 2건의 시민발의가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아울러, 부결된 안건들 일부에 대해서도 의회가 정부에 제도 개선 조치를 권고하는 등 직간접적 정책 효과들이 나타났다.

핀란드의 시민발의제도는 정부 내각이나 기성 정당들이 제기하지 않으려하는 숨은정책 의제들을 발굴해 공론장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역사적인 첫 시민발의로 큰 관심을 모았던 핀란드 내 모피 산업의 금지법안은 환경과 동물권 분야의 대표적 네 단체가 공동 발의한 것이다. 동물의 복지와 권리 그리고 고용 유지 및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시민사회 내의 상충된 이해와 관점을 드러내면서 큰 논쟁을 불러왔다. 발의안은 부결됐지만 발의자들은 이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고, 의회에서도 전보다 두 배 더 많은 의원이 발의안에 공감한 점에서 시민발의제의 간접적 정책 효과를 긍정했다. 이 밖에도 저작권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발의는 거리 예술가들 등 현행 제도에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목소리를 의회와 공론장에 전달했다. 스웨덴어 교과목의 선택과목화를 주장하는 시민발의는 역사적으로 첨예한 정치적 균열을 제공했던 언어 정책에 관한 핀란드 엘리트들의 합의에 도전하면서 뜨거운 논쟁을 의회 안팎에서 불러일으켰다. (스웨덴어는 핀란드어와 함께 핀란드의 공용어이다.) 가장 최근인 2018년에는 현 우파연합정부가 강행하는 적극적 고용 모델’(Activation Model for Employment)에 항의해 한 실업자가 제기한 시민발의가 큰 반향을 불러모아 10만이 넘는 서명을 받았다. 이 발의가 촉발한 공공 여론의 환기에 힘입어 SAK 등 전국의 노동조합 조직들은 20182월 하루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성공한 시민발의인 동성결혼 합법화안은 앞장에서 살펴본 헬싱키 중심의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적 시민행동 캠페인을 통해 실현되면서 의회와 시민 간의 새로운 관계와 소통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의안은 법과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하던 한 학생이 주위 친구들에게 제안한 데서 비롯되었고, 자발적 시민들이 모여 ‘Tahdon 2013’ (‘I Will’이라는 뜻)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페이스북 등 SNS가 관련 정보를 전파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고, 효율적인 온라인 서명 시스템 덕분에 발의안이 공식 제안된 뒤 하루 만에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도 플래시몹, 콘서트 등 페스티발 성격의 다양한 행사를 전개했다. 캠페인에는 100개가 넘는 기업들이 공개 지지를 표명하고, 당시 총리를 포함하여 유명 정치인들도 동참했다. 2014년 의회 본회의에서 최종 심의와 표결을 앞두고 의회 앞 광장에는 약 5,000명의 시민들이 모여 지지 집회를 열고 법 통과를 촉구했다. 이날 의회가 102-95의 근소한 차이로 법안을 통과시키자 전국 단위 정론지인 Helsingin Sanomat핀란드 의회가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했고, 핀란드 시민발의제도는 입법 의제 설정을 위한 정부 입법(Governmental Proposal)과 의원 입법(MP’s Motion) 외의 제3의 대안적 채널로서 제도적 공고화의 첫 문턱을 넘었다. 시민 발의제도는 또 의회 심의 과정, 특히 상임위원회 단계의 입법 심의 과정을 더 개방적이 되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정당 중심 입법 정치와 위원회 내부의 합의 문화 등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정치적 다이내믹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는 1970년대부터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시민발의제도(local citizens’ initaitives)와 주민투표(local referendums) 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15세 이상의 주민은 누구나 지역 시민 발의(를 제기할 수 있고, 인구의 2%가 넘는 주민들이 지지 서명한 정책 제안이나 요구에 대해서는 6개월 이내에 지방자치단체가 공식적인 심의 결과를 회신해야 한다. , 인구의 5% 이상의 주민들이 서명하는 경우에는 관련 제안을 주민투표에 회부하도록 하고 있다. 주민투표의 결과는 자문적(advisory)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수용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다수 주민들이 투표한 안은 민주적 압력으로 작용해 대개 지방자치단체의 최종 결정에 반영된다. 핀란드는 지역 시민발의제도에도 정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kuntalaisaloite.fi)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가 개시된 201391일부터 2017831일까지 4년 동안 총 2,220건의 지역 시민발의가 제안되었고, 그 중 52건은 지역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내용의 발의안이었다.
 
4. 결론 및 제언: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양립 모델을 향하여

20183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공식 발의해 의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전문, 기본권, 권력구조, 지방분권, 경제질서, 사법제도 등 헌법이 포괄하는 제반 분야와 조항에 걸쳐 크고 작은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 그 중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 등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내용은 촛불 이후의 새로운 정치적 조건 속에서 공식적 대의 민주주의 제도와 광장에서 표출된 직접적 시민 정치를 결합하기 위한 핵심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는 흔히 이분법적 대립물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의 발달은 고전적 이분법을 넘어 양자 간의 균형적이고 양립 가능한 모델이 가능하고 또 필요함을 시사한다. 동시에, 시민발의제 등 직접 민주주의적 메커니즘의 이용을 국민의 헌법적 권리로서 보장한다고 합의하는 경우에도 향후 어떻게 제도를 구체적으로 디자인하고 실행할 것인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겨져 있다. 비록 국회 내 합의의 지연으로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 실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향후 헌법개혁과 관련 법률의 제정 과정에서 계속 면밀히 숙고돼야 할 사항들을 제언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1) 시민발의를 비롯한 직접 민주주의 메커니즘의 도입 과제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헌법 개혁, 선거제도 개혁 등 정치제도 전반의 개혁 과제와 연계된 거시적, 전일적(holistic) 관점과 오늘날 후기 근대적 민주주의 조건에 부응하는 열린, 포용적 의회-시민 관계를 추구하는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례대표제와 의회 중심주의 등 정치적 대표의 기제가 온전히 발전되지 않고 정당과 의회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한국 정치의 조건에서 실효성있는 정치개혁 전략과 우선순위 설정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과제이다. 

(2) 시민발의제도를 한국에서도 도입하기로 하는 경우 우선 의제형인가, 완전형인가의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해외 선진국들의 제도적 디자인과 특징, 실제 운용 경험 등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토론이 요청된다. 포퓰리즘의 확대와 정치적 양극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급변하는 민주주의의 조건과 촛불 이후 고양된 시민사회의 요구 등을 감안할 때 제도상으로는 적어도 의회 심의 결과 발의안의 부결 시 국민투표로 연계될 가능성이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이 경우 국민투표 회부 조건으로 상당히 엄격한 절차적 요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핀란드 사례에서 보이듯이 의제의 공론화 및 실질적 제도 개선 등 간접적 정책 효과와 정치 시스템 전반의 영향 등을 감안할 때 의제형 시민발의제도도 충분히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판단된다.
(3) 서명인 수, 서명 모집 기간, 적법 연령 등 절차적 요건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외 사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되, 절대적 또는 확립된 명확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는 점을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경우(인구의 0.9%, 유권자의 1.2%)처럼 서명인의 수가 인구의 1% 내외 선에서 결정하면 적절하리라 판단되며, 초기 제도 시행 경과를 지켜보며 재검토할 여지를 갖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서명 모집 기간은 6개월-1년 이내 정도면 적정하리라 판단되며, 연령은 만 18세 이상으로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지방 주민발의제도(local citizens’ initiatives)의 경우에는 만 16세 이상의 기준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4) 온라인 서명 시스템(e-collection system)은 디지털 민주주의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도입하되 서명 진위 확인 및 개인정보 보안 문제를 엄격히 고려해 시스템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 등 국가기관이 개입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온라인 민주주의 발전을 왜곡, 저해한 사례 등을 고려할 때 기술적 보안의 문제는 각별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엄격히 설계된 정부 운영 플랫폼만 허용하고, 이에 대한 의회 감사와 시민사회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일정 기간을 정해 제도 설계와 실험을 전개한 뒤 전면 시행하는 등의 사려깊은 제도 실행 프로세스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도 운영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사회적 신뢰가 제고된 뒤 핀란드처럼 정부 차원의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demokratia.fi)을 설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5) 의회 심의 절차와 관련하여 시민발의자 또는 그 대표자가 의회 본회의장과 위원회 등에 직접 출석해 발의안의 취지와 목표를 설명하고 의원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입법 심의 과정에서 관련 전문가 및 다양한 시민사회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입법 협의 절차를 가동하고, 필요하다면 일반 시민들도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공공 포럼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소관 상임위원회 심의 후에는 반드시 별도 보고서를 채택해 본회의에 보고하고, 이를 토대로 시민발의안에 대한 본회의 토론을 진행한 뒤 표결로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시민들이 제출한 의제가 의회 전 과정에서 충실하고 밀도있게 심의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

(6) 시민발의제 등의 직접 또는 참여 민주주의적 제도를 국가적 수준에서 도입하는 경우 의회 내에 별도의 시민참여·소통위원회 등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이 설립되는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임무와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1) 의회 차원의 중장기적 시민 소통과 참여 전략 수립; (2) 시민 친화적 관점에서 시민발의안들에 관한 의회 심의 절차와 규정 관장; (3) 소관 상임위원회와 시민발의자 사이의 원활한 대화와 협의를 매개, 촉진; (4) 서명 정족수에 미달해 의회에 제출되지 못한 발의안들을 정기적으로 리뷰하여 새로운 입법 의제 발굴 및 유권자들의 요구를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 (5) 시민의회, 시민합의회의, 시민정보센터, 청소년의회 등 다양한 시민교육 및 혁신적 시민참여 프로그램 주관, 운영 등